당태종(唐太宗)이 바라본 발해(渤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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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의 《觀滄海(관창해)》와 더불어, 발해와 갈석산의 위치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당태종의 《春日望海(춘일망해)》는 서기 645년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 당시 그가 갈석산에 올라 창해(滄海), 즉 발해를 바라보며 지은 시(詩)이다.
그런데 시를 잘 살펴보면, 뜻밖에도 그 내용 중에 발해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정보가 포착된다.
논하자면, 「懷卑運深廣 (낮은 곳을 품어 드넓게 펼쳐졌다)」는 것은 갈석산에서 내려다 본 발해만의 해안이 드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었음을 가리키고, 「有形非易測 無源詎可量 (형상이 있어도 가늠이 쉽지 않아 어디가 시작인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한 것은, 두눈으로 발해를 보면서도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서부터 바다가 시작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음을 말해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서기 205년 조조(曹操)가 갈석산에 올라 《觀滄海(관창해)》를 읊었을 때와는 달리, 당(唐)대에 이르러 발해만의 바다가 갈석산으로부터 더욱 멀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황하에 떠밀려온 토사(土沙)가 오랜 세월동안 쌓이며, 발해만의 육지화가 지속되어 온 사실과도 부합한다. (지도1 참조)
지도 1 - 발해만의 해안선 변천. 본 지도 출처: 류제헌, 『중국 역사 지리』 1999
특히 당태종은 「洪濤經變野 (넓은 바다는 변화를 겪어 들판이 되었다)」고 하여, 아예 당태종 자신이, 육지화가 진행되던 발해만의 지리적 변화에 대하여 잘 인지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나오는 「동해가 세번 뽕나무 밭으로 변했다 (東海三為桑田)」는 이야기로부터 유래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