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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唐太宗)이 바라본 발해(渤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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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望海 (봄날에 바다를 바라보다)

唐太宗

披襟眺滄海 憑軾玩春芳    옷깃 헤치고 창해를 바라보며, 수레 손잡이에 기대어 봄 향기 음미하노라.
積流橫地紀 疏派引天潢    바다와 대지는 이치에 따라 트이고 갈라져 은하수를 끌어왔도다.
仙氣凝三嶺 和風扇八荒    신선의 기운이 세 산줄기에 머물고 건들바람이 온누리에 부는데,
拂潮雲布色 穿浪日舒光    바닷물 떨쳐낸 구름은 색을 펼치고 파도를 뚫은 태양은 빛으로 흩어져
照岸花分彩 迷雲雁斷行    언덕에 핀 꽃을 비추어 광채를 베풀고, 구름이 미혹하여 기러기 행렬 갈라졌구나.
懷卑運深廣 持滿守靈長    낮은 곳을 품어 드넓게 펼쳐졌으니 가장 영묘하고 뛰어나다 하기에 충분한데,
有形非易測 無源詎可量    형상이 있어도 가늠이 쉽지 않으니 어디가 시작인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洪濤經變野 翠島屢成桑    넓은 바다는 변화를 겪어 들판이 되었고 푸른 섬은 여러번 뽕밭이 되었다네.
之罘思漢帝 碣石想秦皇    지부산에서 한무제를 생각하고 갈석산에서 진시황을 떠올리니
霓裳非本意 端拱且圖王    신선의 옷 입는 건 내 본 뜻이 아니어, 단정히 두 손 모으고 왕업(王業)를 도모(圖謀)한다.


조조(操)《觀滄海(관창해)》와 더불어, 발해와 갈석산의 위치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당태종의 《春日望海(춘일망해)》는 서기 645년 당태종의 고구려 원정 당시 그가 갈석산에 올라 창해(滄海), 즉 발해를 바라보며 지은 시(詩)이다.


그런데 시를 잘 살펴보면, 뜻밖에도 그 내용 중에 발해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정보가 포착된다.


논하자면, 「懷卑運深廣 (낮은 곳을 품어 드넓게 펼쳐졌다)」는 것은 갈석산에서 내려다 본 발해만의 해안이 드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었음을 가리키고, 「有形非易測 無源詎可量 (형상이 있어도 가늠이 쉽지 않아 어디가 시작인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한 것은, 두눈으로 발해를 보면서도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서부터 바다가 시작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음을 말해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서기 205년 조조(操)가 갈석산에 올라 《觀滄海(관창해)》를 읊었을 때와는 달리, 당(唐)대에 이르러 발해만의 바다가 갈석산으로부터 더욱 멀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황하에 떠밀려온 토사(土沙)가 오랜 세월동안 쌓이며, 발해만의 육지화가 지속되어 온 사실과도 부합한다. (지도1 참조)

 

지도 1 - 발해만의 해안선 변천.  본 지도 출처: 류제헌, 『중국 역사 지리』 1999

 


특히 당태종은 「洪濤經變野 (넓은 바다는 변화를 겪어 들판이 되었다)」고 하여, 아예 당태종 자신이, 육지화가 진행되던 발해만의 지리적 변화에 대하여 잘 인지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