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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 (安史之亂) 안록산 (安祿山) 반란사건의 본거지 갈석산 (碣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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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대 시인 두보(杜甫, 712~770)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의 2대 시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두보는 당나라의 절도사 안록산(安祿山, 703?~757)과 그의 부하 사사명(史思明, 703~761)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사건 즉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을 직접 격기도 하였는데, 그때의 생생한 증언들이 그의 시에 상세히 실려있는 까닭에 詩史 즉 '시인 역사가'로도 불린다.

 

두보의 시집에 실린 '옛 우복야 상국 장공구령 (故右僕射相國張公九齡)'이란 제목의 시에 안사의 난과 관련하여 갈석산이 아래와 같이 등장한다.

 

....상략

주군의 백옥당에 오르시어 / 上君白玉堂

주군의 금화성에 거하셨도다 / 倚君金華省

갈석산은 해마다 더 가파르게 다가오는데 / 碣石歲崢嶸

세상은 날마다 개구리들로 넘쳐나도다 / 天地日蛙黽

하략....

 

두보(杜甫)의 시를 해석한 엄청난 분량의 주해서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시는 고대로부터 많이 연구되어 온 듯 한데, 위에 일부를 소개한 시에 나오는 갈석산의 위치에 관하여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언급한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송(宋)대 황희(黃希), 황학(黃鶴) 부자의 《補注杜詩》이다. 《補注杜詩》는 송대의 두시(杜詩, 즉 두보의 시) 주석가 사윤(師尹)의 말을 빌어 주해하였다.

 

사윤(師尹)이 말하기를 갈석산은 안록산의 본거지 방면에 있다. 지세가 험하여 가파르며, 높고 크다. 師曰碣石山在安禄山所據之方 崢嶸髙大貌

『補注杜詩』 권14

 

두번째 주해서는 청(淸)대 구조오(仇兆鰲)의 《杜詩詳註》이다.

 

갈석산은 범양(范陽)의 땅이다. 지세가 험하여 가파르며, 높고 크다. (안)록산의 본거지이다. 碣石范陽地 崢嶸髙大貌 禄山所據

『杜詩詳註』 권16, 仇兆鰲, 청(淸) 강희(康熙) 32년(1693년) 편찬

 

두 주해서 모두 갈석산이 안록산 반란의 본거지이거나 또는 본거지의 방면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구조오의 주석은 명확하게 갈석산이 범양(范陽)에 있다고 못 박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두보 자신도 그의 시에서 안록산을 갈석산에 비유하여 그곳에 근거지를 둔 그의 반란으로 발발된 안사의 난(安史之亂) 사태가 점점 불길해짐을 암시하였다. (궁중에 들어앉아 끊임없이 언쟁만을 벌이는 벼슬아치들은 넘쳐나는 개구리들에 비유하였다.)

 

갈석산이 범양에 있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범양의 위치만 찾으면 갈석산의 위치는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위키백과 등의 자료에 고대의 범양이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에서 북경시에 이르는 지역이라고 되어 있으니 답은 이미 나온 셈이지만, 사서의 기록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역수가 나와서 동으로 범양에 이르러 유수로 들어간다. 易水所出 東至范陽入濡也. [주] 사고가 말하기를 역수가 범양에 이르러 래수로 들어간다고 말하기도한다고 했다. 濡유의 음은 놘(乃官反)이다. 師古曰 言易水又至范陽入淶也 濡音乃官反

『漢書』 지리지, 幽州 涿郡

 

범양, 범수의 북쪽에 있는 현의 이름이다. 탁군에 속하였으며 지금의 역주 역현 동남에 옛성이 있다. 范陽 縣名在范水之陽 屬涿郡 故城在今易州易縣東南

『後漢書』 光武帝紀

 

역수는 탁군 고안현 염향 서쪽의 산에서 나와 동으로 범양현의 남쪽을 지나고 또 동으로 용성현의 남쪽을 지난다. 易水出涿郡故安縣閻鄉西山 東過范陽縣南 又東過容城縣南

『水經注』 권11, 易水

 

(거마하)는 또 동남쪽으로 흘러 범양현의 옛성 북쪽을 지나면서 역수가 (거마하로) 들어간다. 又東南 逕范陽縣故城北 易水注之

『水經注』  권12, 巨馬河

 

래수현, 옛날에는 주현이라고 불렀는데 후주가 폐하였다. 개황 원년에 범양현을 주현이라고 하고 범양현을 여기에 고쳐 설치하였다. 개황 6년에 고안현이라 고쳤고 개황8년에 폐하였다가 개황 10년에 또한 다시 영양현으로 설치하였으며 개황18년에 래수현으로 고쳤다. 淶水 舊曰逎縣 後周廢 開皇元年 以范陽為逎 更置范陽於此 六年改為固安 八年廢 十年又置為永陽 十八年改為淶水

『隋書』 지리지, 冀州 涿郡

 

범양현, 한(漢) 탁군의 탁현이며 군(郡)을 다스리는 곳이다. 조위(曹魏) 문제(文帝)가 범양군으로 고쳤고, 진(晉)에서는 범양국이었으며, 후위(後魏)는 범양군으로 하였고 수(隋)에서는 탁현이 되었다. 무덕(武徳) 7년에 범양현으로 고쳤다. 대력(大曆) 4년에 현을 탁주에 설치하였다. 范陽 漢涿郡之涿縣也  郡所治  曹魏文帝改為范陽郡  晉為范陽國  後魏為范陽郡  隋為涿縣 武徳七年  改為范陽縣 大歴四年 復於縣置涿州

『舊唐書』 지리지, 冀州 涿郡

 

지도 1  고대 범양(范陽)과 갈석산의 위치.  본 지도 출처 : 『中國歷史地圖集3-精裝本-魏晋』 譚其驤 지음

 

범양 옛성은 진(秦)나라 범양현이다. (역)현 동남쪽 62리 범수의 북쪽에 있다. 范陽故城秦范陽縣也 縣東南六十二里 以在范水之陽

『元和郡縣志』  권22, 易縣

 

고성진은 하북성 보정시 정흥현에 딸려있다. 하북성 보정시 정흥현 관할이다. 옛날에는 강물(水)의 북쪽을 '양(陽)이라 칭하였다. 성(城)이 범수의 북쪽에 있다하여 범양이란 이름을 얻었다.  (범수: 즉 지금의 정흥현 고성진 계조하이다.) 固城鎮隸屬於河北省保定市定興縣 是河北省保定市定興縣轄鎮,古時稱南水北為陽,城在范水之北而得名范陽 (范水:即今定興縣固城鎮雞爪河)

『바이두 백과』  '固城鎮'

 

위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범양(范陽)이란 지명은 고대로부터 지속적으로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의 정흥현(定興縣), 래수현(淶水縣), 역현(易縣), 그리고 탁주(涿州)  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을 가리키고 있음이 자명하다 (아래 '고대 범양 위치도' 참조). 따라서 고대 갈석산의 3대 후보지, 즉 하북 창려현의 '갈석산', 산동 무체현의 '갈석산', 그리고 하북 보정시의 낭아산 중에 안록산의 본거지였던 고대 범양 방면의 진짜 갈석산은 바로 낭아산이다.

 

지도 2  안사의 난 - 안록산과 사사명의 진격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