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고대사공부방


학경(郝經)의 능천집(陵川集) 서황화탁군선주묘비음(書黄華涿郡先主廟碑隂) 전문 번역

카테고리 없음

 

"사료 전문은 피하고 극히 일부분을 가지고 역사 해석을 한다"는, 필자의 이전 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담은 글이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데, 핵심이 되는 부분의 해석은 달라질 것이 없을 듯하지만, 여하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학경의 《書黄華涿郡先主廟碑隂(서황화탁군선주묘비음)》 전문에 대한 번역 및 해석을 시도하였다. 부족한 실력이다 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바라며, 여러 독자분들의 한 수 가르침을 기대한다.

 

 

사진 1 - 보정 낭아산 전경

 

 

書黄華涿郡先主廟碑隂 (황화탁군선주사당 비석 뒷면의 명문)


제갈량을 칭찬한 사람은 두보(杜甫)뿐이었네. 소릉(少陵)은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에 대해 논평하며 선대 황제의 또 다른 관점을 보였으니, 임금과 신하가 한몸이 되어야 비로소 부끄럽지 않도다. 촉(蜀) 승상(丞相)의 사당에서 루상(樓桑) 마을을 바라본다.
稱道孔明獨有杜。少陵論昭烈复見王黄華。君臣一體始無媿,蜀相祠望樓桑家。


어제 죄수 신분으로 조서(詔書)에 응하여 연남(燕南)을 지나다가 푸른 숲에서 솔개와 까마귀가 울어대는 것을 보았네.
昨囚應詔過燕南,青林一簇啼鳶鴉。


마을의 사제(社祭)가 끝나 피리와 북 소리는 잦아들었으며, 낭무(廊廡) 안은 어두컴컴했고, 어둠 속에서 용과 뱀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네.
簫鼓寂寞村社散,廊廡慘淡昏龍蛇


서남쪽에는 푸른 옥에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데, 비문을 읽을 때마다 경외와 감탄을 멈출 수 없구나.
西南一碑刻蒼玉,每讀輒止驚咨嗟。


당당히 극복하고자 하는 한 조각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의를 지키며, 조금도 어긋남이 없도다.
磊落一片恢復心,始終於仁無少差。


당양(當陽)의 말과 영안(永安)의 유언은 하(夏)·상(商)·주(周)의 성왕들조차 능가할 수 없었다네.
當陽之言永安命,三代聖王何以加。


손권(孫權)은 뛰어난 재능과 야망을 지녔으나, 단지 참람하고 거짓된 군주에 불과했고, 조조(曹操)는 기만적이고 공연히 교활하였네.
仲謀雄略祇僭僞,阿瞞詭譎空姦邪。


비문의 논지는 진실되고 공정하며, 문채가 화려하고 그득하여 마치 향기로운 꽃과 같구나.
論議到此真不欺,文采絢縟森芳葩。


서예는 두 왕(二王)을 본받아 해서와 행서를 창작했으며, 걸작으로서 당시의 유행하던 서체를 훨씬 능가했는데,
書法二王作真行,得意頗勝如時花。


연(燕)·조(趙)나라 의로운 선비의 기풍이 완성되지 못하였음이 다만 한이 되어, 북받치는 슬픔을 노래하는구나.
歌謠慷慨燕趙義,士風,但恨不能完。


한나라의 군대가 패하여 삼파(三巴)는 무너졌도다.
漢軍敗崩三巴。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며 백번을 정독하니, 한낮의 해가 처마끝에 기울어 있음을 알지 못했네.
百匝細讀立復坐,不覺午日傾檐牙。


떠나려고 망설이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굶주린 말은 마른 싸리나무 가지를 걷어차고 있구나.
徬徨欲去不忍去,飢馬更擊枯荆楂。


동이(東夷)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얻었을까?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왕실의 기운이 아침노을 처럼 일렁인다.
東夷何以得此人,日出之國,王氣韜朝霞。


요나라를 멸하고, 송나라를 복속시켜 중원을 다스렸고, 예악과 제도는 흠잡을 데 없었도다.
滅遼服宋帝諸夏,禮樂制度無疵瑕。


집안은 대대로 장묘(章庙)의 평범한 백성으로서, 외딴곳에서 이곳으로 온 귀족 가문이었다.
家世章庙布衣臣,貴胄鼎族來幽遐。


봄은 깊은데, 지름길로 압록강(鴨綠江)을 건너니, 태행산(太行山) 산마루는 드높이 솟아있고 바다엔 돛을 단 뗏목이 떠있네.
春深徑渡鸭緑江,太行山嶺高挂浮海槎。


풍류적이고 우아한 품위는 당대에 으뜸으로 꼽히며, 마치 푸른 구름 아래의 옥수처럼 높은 감투를 쓰고 있도다.
風流儒雅冠當代,碧雲玉樹峩鳥紗。


한(漢)·위(魏)나라 이래로 이런 작품은 없었으니, 내가 이 시(詩)를 지은 것은 여러 유생들과 더불어 이를 기리기 위함일세.
漢魏以來無此作,作詩爲向諸生誇。

 

『陵川集』 권9  '書黄華涿郡先主廟碑隂'

 

 

  1. ☞ 압록강(鴨綠江)은 태행산맥(太行山脈) 아래 있었다. 참조 바람
  2. 黄華涿郡先主(황화탁군선주) : 중국(中國) 삼국시대(三國時代)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皇帝)(161~223) 유비(劉備)를 가리킨다.
  3. 두보(杜甫, 712년 ~ 770년)는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호(號)는 소릉(少陵)이다.
  4. 낭무(廊廡) : 정전(正殿) 아래로 동서(東西)에 붙여 지은 건물
  5. 손권(孫權, 182~252)은 중국 후한 말의 군웅이자 삼국시대 동오(東吳)를 건국한 초대 황제이다. 자(字)는 중모(仲謀)이다.
  6. 조조(曹操, 155~220)는 중국 후한 말의 군웅, 정치인이다. 자(字)는 아만(阿瞞)이다.
  7. 이왕(二王) : 왕희지(王羲之, 303~361)와 왕헌지(王獻之, 344~386) 서예가 부자를 가리킨다.
  8. 삼파(三巴) :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일대 지역인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의 지역을 말한다.
  9. 문장의 맥락상 '挂(괘)'는 높이 "걸려 있는" 태행산의 산마루와 '挂帆(괘범)' 즉 "돛을 걸다"의 뜻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太行山巔高挂浮海槎(태행산전고괘부해사)"는 높이 솟아 있는 태행산(낭아산) 정상부 암벽의 모습을 바다(염태정)에 떠 있는 뗏목에 걸린 돛에 비유한 시적 표현으로 보인다.
  10. 옥수(玉樹) :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
  11. 중국 삼국 시대 221년에 유비(劉備)가 세운 촉한(蜀漢)을 가리킨다.
  12. 수도(북경) 탁현(涿縣) 남쪽 15리에 있다. 《三國志(삼국지)》 '촉지(蜀志)'에 「유비(劉備)의 집 동남쪽 모퉁이의 담장에 뽕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키가 5장(丈)이 넘고, 멀리서 보면 나무 그늘이 드리운 모습이 마치 거개(車蓋)처럼 보인다. 유비가 어렸을 때, 그 나무 아래에서 씨족 아이들과 농담하기를 "나도 반드시 깃털이 더부룩한, 지붕 덮인 마차를 타겠다" 하였다」 고 했다. 《水經注(수경주)》에 「독항(督亢)의 구수(溝水)는 동쪽으로 흘러 탁현(涿縣) 력정(酈亭) 루상리(樓桑里) 남쪽을 지난다」 고 했다. 在京兆涿縣西南十五里。〔三國蜀志〕先主舍東南角籬上有桑樹。高五丈餘。遙望見童童如車蓋。先主少時。常與宗中諸兒於樹下戲言吾必當乘此羽葆蓋車。〔水經注〕督亢溝水。東逕涿縣酈亭樓桑里南。卽劉先主舊里也。 『中國古今地名大辭典』 '樓桑村' ** 거개(車蓋) : 상류(上流) 계급(階級)의 사람들이 타는 수레 위에 둥글게 버티던 우산(雨傘) 같은 휘장(揮帳). 비나 볕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 독항(督亢) : 고대 지명으로 지금의 하북성 고비점시(高碑店市) 및 정흥현(定興縣) 일대
  13. 판본의 "日出之圖"는 "日出之國"의 오기로 보인다. 『陵川集』 권18의 《思治論(사치론)》이란 제목의 글에 고려(髙麗)와 예맥(濊貃)이 "日出之國(해가 뜨는 나라)"으로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