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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동녕로(東寧路) 비정위치의 통설상 자체모순 - 고려 서경 위치 비정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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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동녕로 비정위치의 통설상 자체모순

 
원종(元宗)10년(1269), 원종을 폐위시킨 임연(林衍)의 무신정권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난을 일으킨 이연령, 최탄 등이 서경 일대의 고려 영토를 들어 원(元)에 귀부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려 서경이 원(元)의 영토로 편입되는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이듬해 원(元)은 서경에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하고, 이어서 5년 후에는 동녕로(東寧路) 총관부로 승격시키게 되는데, 주지하듯이 현 학계의 통설은 원(元)의 동녕로가 평양을 중심으로 한 今 한반도의 평안도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원(元)의 통치기구인 동녕로가 한반도의 평양에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 현재 한민족의 터전인 한반도 한가운데를 외세에 내주었다는 역사상 오점이 되겠으나, 담담히 받아들여 미래를 위한 거울로 삼는 것이 맞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렇지 않고 한사군(漢四郡)의 망령에 더하여 부당하게 강요되는 또 하나의 패배적 가짜역사라면, 이를 단호히 배격하고 사실 관계를 따져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노력의 일환으로, 명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측의 정사인 《明史(명사)》의 '지리지'에 드러난 원(元) 동녕로(東寧路)의 실제 위치에 대하여 알아보자.

광녕위(廣寧衛)는 원(元)의 광녕부로(廣寧府路)이다. 홍무초(1368)에 [광녕부로를] 폐하였다. [홍무]23년(1390) 5월에 [광녕]위를 설치하였다. 홍무25년(1392) 3월에 요왕부를 세워 건문중에 호광 형주부로 개봉(改封)하였다. 서쪽에 의무려산(醫無閭山)이 있고, 남쪽은 바다와 잇닿았다. 동쪽에 로하가 있고, 동북에 주자하가 있는데, 하류에서 모두 요하로 유입된다. 또 서쪽에 있는 판교하는 남쪽으로 바다에 흘러든다. 북쪽에 백토창관과 분수령관이 있다. 서북에 위가령관이 있다. 또 북쪽의 의주(懿州)는 원(元)의 요양로(遼陽路)에 속했다. 홍무26년(1393) 정월에 광녕후둔위(廣寧後屯衛)를 이곳에 설치하였다. 영락8년(1410), [의(懿)]주를 폐하고 [광녕후둔]위를 의주위성(義州衛城)으로 옮겼다. 또 서남에 여양관과 동북에 망평현이 있다. 모두 원(元)의 광녕로(廣寧路)에 속했다. 또 서북에 있는 천주는 원(元)의 대녕로에 속했다. 또 동북쪽에 순주(順州)가 있고, 서북쪽에 성주(成州)가 있는데 원(元) 시기 모두 동녕로(東寧路)에 속했다. 또 서남에 있는 종수성에 원(元)이 천호소를 두었다가 모두 홍무중에 폐하였다. 동으로 도사까지의 거리가 420리이다.  廣寧衛元廣寧府路。洪武初廢。二十三年五月置衛。洪武二十五年三月建遼王府。建文中改封湖廣荊州府。西有醫無閭山。南濱海。東有路河,東北有珠子河,下流皆注於遼河。又板橋河在西,南流入海。北有白土廠關,又有分水嶺關。西北有魏家嶺關。又北有懿州,元屬遼陽路。洪武二十六年正月置廣寧後屯衛於此。永樂八年,州廢。徙衛於義州衛城。又西南有閭陽關,東北有望平縣,元俱屬廣寧路。又西北有川州,元屬大寧路。又東北有順州,西北有成州,元俱屬東寧路。又西南有鐘秀城,元置千戶所於此。俱洪武中廢。東距都司四百二十里。
『明史』 권41 地理2 廣寧衛
 

지도 1 - (元)동녕로(東寧路)와 (元)광녕부로(廣寧府路), 즉 (明)광녕위(廣寧衛)의 통설상 상대적 위치가 《明史(명사)》 '지리지'의 기록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본 지도 출처 : 『中國歷史地圖』 '元代中國本部圖', 中華學術院 臺北 1980


위 《明史》 '지리지'의 기사에 보이다시피 원(元) 동녕로(東寧路)의 속주인 순주(順州)와 성주(成州)가 명(明) 광녕위(廣寧衛)의 동북쪽과 서북쪽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고 너무나도 명백히 적혀 있다. 기사에 의하면 명(明) 광녕위의 북쪽 방면에 원(元)의 동녕로가 자리잡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대로 원(元)의 동녕로가 한반도의 평안도에 있었다고 하는 학계의 통설을 따르자면, 《明史》 '지리지'에 근거하여 명(明)의 광녕위는 평안도 남쪽 방면의 황해도 또는 경기도에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물론 역사지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지도1 참조) 게다가 정작 같은 통설상의 광녕위(즉 지도1상의 광녕부로)는 기록상의 방위에 전혀 맞지 않는 今 요녕성 북진(北鎮)에 버젓이 그려놓았으니 이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동녕로 = 한반도 평양•평안도」설은 애초부터 왈가왈부할 가치조차 없는,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억측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明史》 '지리지'를 조금만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자체모순적 엉터리 학설을 광복 80년이 다 되도록 미련스럽게 고집하는 현 주류 강단사학계는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각성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고려의 서쪽 강역을 今 요녕성 요하(遼河) 이동 지역으로 한정하여 사료를 해석하는 비주류 강단사학계의 일각에서는 동녕로(東寧路)의 위치를 今 요녕성 요양(遼陽) 일대에서 찾고 있는 듯한데, 그렇다면 역시 《明史》 '지리지'에 의거하여, 명(明)의 광녕위(廣寧衛) 또한 요하 이동, 요양 남쪽 방면의 요동반도 일대에 자리잡아야 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중국 측의 광녕위(통설상 今 요녕성 북진北鎮 일대)를 오히려 더욱 동쪽으로 끌어들여, 그렇지 않아도 이미 왜곡되어 부당하게 축소된 그나마의 고려 영토 마저 스스로 떼어 내주는 꼴이다. 물론, 주지하듯이 명(明)의 광녕위는 사서의 기록상 요수(遼水)의 서쪽에 위치하였으므로, 통설에 따라 고대의 요수를 今 요하로 본다 하더라도 광녕위를 요하 이동에 비정할 수는 없다. 여하튼 시작부터 고려의 강역을 요하 이동에 가두어 놓고 지명의 위치를 비정하다보니 첫단추를 잘못 꿴 격이 되어,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한민족의 참된 옛 강역을 진실로 찾기 원한다면 역시 각성하기 바란다.

정리, 요약하면, 위 논거에 따라 원(元)의 동녕로(東寧路)는 한반도 평양•평안도 또는 요녕성 요양(遼陽)에 비정될 수 없다. 또한 고려 서경과 원(元)의 동녕로(東寧路)는 동일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고려 서경 역시 한반도 평양•평안도 또는 요녕성 요양에 비정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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