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평(西安平) 위치 비정 3부 - 소수맥(小水貊)은 하북성 북거마하(北拒馬河) 유역에 건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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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淶'는 거마하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이다.
앞서 밝혀진 대로 《遼史》 지리지 기록의 문구 「[鐵州]在京西南六十里」의 '京'은 상경(上京)을 가리키므로, 기록은 마땅히 「[안시성(즉 철주鐵州)은] 상경 서남쪽 60리에 있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요나라 상경임황부는 안시성 북동 방면 60리에 위치하였던 것이다.
고구려 안시성의 절대위치인 今 하북성 보정시 역현(易縣) 북소촌(北邵村) 인근 봉황산(鳳凰山)으로부터 북동쪽으로 60리 떨어진 곳은 보정시 래수현(淶水縣) 부근의 거마하(拒馬河) 유역으로서, 서북쪽은 태행산맥의 험준한 산줄기로 막혀있고, 남쪽은 백양정(白洋淀)의 습지가 그 흔적으로 존속하는 고대 발해만의 내해가 자리잡고 있었다. 즉 그 일대는 《遼史》 지리지에 서술된 대로, 「산을 등지고 바다를 안고 있다」는 요나라 상경(上京)에 정확히 부합하는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래류하(淶流河)가 서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상경(上京)의 3면을 둘러싸고 동쪽으로 흘러 곡강(曲江)으로 들어가는데, 곡강(其)의 북동쪽 흐름은 안출하(按出河)이다. 淶流河自西北南流,繞京三面,東入於曲江,其北東流為按出河。
『遼史』 권37 地理志1, 上京道 上京臨潢府
《遼史》 지리지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 조항에는 래류하(淶流河)라는 하천이 상경(上京)의 3면을 둘러싼다고 기록되어 있어 요나라 상경임황부의 위치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우선 淶流河의 '淶'자에 주목해보자.
래(淶): 강물이다. 북쪽 땅 광창(廣昌)에서 비롯되어 동쪽으로 하(河)에 흘러든다. 水(수)와 「來(래)의 음」을 따른다. 병주(幷州)에 물을 댄다. 淶:水。起北地廣昌,東入河。从水來聲。幷州浸。
『說文解字』 '水'部
광창현(廣昌縣). 래수(淶水)가 동남쪽으로 흘러 용성(容城)에 이르러 하(河)로 들어가는데, 3개의 군을 지나며 500리를 간다. 병주(并州)에 물을 댄다. 왕망이 말하기를 광병(廣屏)이라 했다. 廣昌,淶水東南至容城入河,過郡三,行五百里,并州浸。莽曰廣屏。
『漢書』 권 28下 '地理志', '幽州' '代郡'
'淶'는 《說文解字(설문해자)》에 래수(淶水) 즉 거마하(拒馬河)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올라 있을 만큼 유서가 깊은 글자이다. 이는 곧 '淶'가 거마하가 아닌 다른 하천의 명칭에 함부로 쓰였을 리 없음을 시사한다. 안시성이 있었던 역현(易縣) 봉황산(鳳凰山)의 북동쪽 60리에 공교롭게도 래류하(淶流河)의 실체로서 유력해 보이는 거마하가 흐른다는 사실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요나라 시기 (즉 북송北宋 시기)의 척(尺, 0.3080미터)을 기준으로 통용되던 당시의 「1리(里) 당 1,800척」의 표준을 적용하면, 역현(易縣) 봉황산(鳳凰山)의 안시성터 북동쪽 60리(33.26km)에 해당하는 곳은, 좀 더 정확히 今 보정시 래수현(淶水縣) 왕촌진(王村鎮) 일대로서, 거마하가 서북쪽의 산지에서 남쪽으로 흘러나와 동, 동남 및 남쪽 방향의 여러 지류들로 갈라지면서 하북성 래수현, 탁주시(涿州市) 및 고비점시(高碑店市) 일대의 평야 지대를 감싸는데, 특히 래수현의 왕촌진(王村鎮) 일대는 동남 방면을 제외한 사방이 거마하의 지류들로 둘러싸인 지형을 이루는 곳으로서, 「래류하(淶流河)가 서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흘러 상경(上京)의 3면을 둘러싼다」는 《遼史》 지리지의 기록에 일치한다. (지도3 참조)
위 사항들에 근거하여 필자는 요나라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위치를 今 보정시 래수현(淶水縣) 왕촌진(王村鎮) 일대에 비정한다.
지도 3 - 서안평 위치 비정. 발해만의 고대 해안선은 『Caroline Blunden & Mark Elivn, Cultural Atlas of China, 1998』와 『가정하간부지(嘉靖河間府志)』에 수록된 구하도(九河圖)를 참조하였다. 본 지도 출처: tencent maps
요나라 상경도의 호주는 임황부와 더불어 옛 서안평 지역에 있었다.
호주(壕州). 국구(國舅) 재상(宰相)이 남쪽을 쳐서 사로잡은 한민(漢民)들을 요동(遼東) 서안평현(西安平縣) 옛 땅에 살게 하였다. 현주(顯州) 동북쪽 220리에 있다. 서북쪽으로 720리를 가면 상경에 이른다. 호수는 6,000이다. 壕州。國舅宰相南征,俘掠漢民,居遼東西安平縣故地。在顯州東北二百二十里,西北至上京七百二十里。戶六千。
『遼史』 권37 地理志1, 上京道
한편 《遼史》 지리지 '상경도(上京道) 호주(壕州)' 조항에는, 외부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상경(上京)의 영역에 배치하여 둔 특수 행정구역인 두하군주(頭下軍州)의 하나로서, 호주(壕州) 역시 서안평현(西安平縣)의 옛 땅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상경의 중심부인 임황부(臨潢府)와 더불어 호주가, 그 둘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서안평의 영역내에 병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기록에 상경[임황부]의 위치가 호주(壕州)의 서북쪽 720리라고 기록되어 있어 혼란을 일으킨다. 즉 본 글의 1부에 소개한 대로 《遼史》 지리지 상경도(上京道)편의 앞부분에 이미 상경임황부(臨潢府)가 본래 서안평(西安平) 옛 땅이었다고 언급해 놓고서는, 뒤에 말을 바꿔 상경[임황부]가, 같은 서안평에 위치했던 호주로부터 멀리(720리) 떨어져 있었다고 하는 자기모순적인 기록이 문제가 된다는 점으로서, 이러한 기록상의 불일치는 유감스럽게도 《遼史》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였다.
후대의 어설픈 붓장난이 의심되는 정황인데, 필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서북쪽으로 720리를 가면 상경에 이른다」고 운운한 부분을 제외하면 《遼史》 지리지 호주(壕州) 조항의 기록은 오히려 서안평현(西安平縣)의 본 비정 위치에 대한 또하나의 유력한 교차검증을 제공한다. 이에 대하여는 차후에 글을 통하여 다시 논하기로 한다.
소수맥은 북거마하 유역에 건국하였다.
또 소수맥(小水貊)이 있다. [고]구려는 대수(大水)유역에 나라를 세워 거주하였다. 서안평현(西安平縣)의 북쪽에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소수(小水)가 있었는데, 고구려의 별종(別種)이 소수에 의지하여 나라를 세웠으므로, 그 이름을 소수맥이라 하였다. [그곳에서는] 좋은 활이 나오니, 이른바 맥궁(貊弓)이다. 又有小水貊. 句麗作國, 依大水而居, 西安平縣北有小水, 南流入海, 句麗別種依小水作國, 因名之爲小水貊, 出好弓, 所謂貊弓是也.
『三國志』 魏志 권30, 東夷傳 高句麗
보정시 래수현(淶水縣) 북쪽의 험준한 산지로부터 갈라져 흘러나온 거마하(拒馬河)의 지류들 중 하나인 북거마하(北拒馬河)는 래수현 및 고비점시(高碑店市) 일대의 북쪽 방면을 동남, 동, 북동 방향으로 흘러 탁주시(涿州市) 북동쪽 방면에 이르고, 유리하(琉璃河) 및 소청하(小清河)와 합류하여 백구하(白溝河)를 이룬 뒤 남쪽으로 고대 발해만의 내해였던 백양정(白洋淀)에 유입된다. 서안평(西安平)의 중심부를 今 고비점시로 볼 경우 북거마하의 유로는 《三國志(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된 소수(小水)의 위치 및 흐름에 정확이 부합한다. 소수맥(小水貊)의 소수는 今 북거마하임을 알 수 있다. (지도3 참조)
지도 4 - 하북성에는 랑방시 향하현 안평진(廊坊市香河縣安平鎮)과 형수시 안평현 안평진 (衡水市安平縣安平鎮), 오직 두 곳에 '安平'이란 지명이 현존하는데, 이에 대비하여, 서안평(西安平)의 비정 위치인 고비점시(高碑店市)는 '西安平'과 [왕망(王莽)의] '北安平'의 지명들이 시사하는 상대적 방향에 각각 부합한다. 본 지도 출처: 구글 지도
결론 (1, 2, 3부 통합)
요나라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는 안시성(安市城) 북동쪽 60리에 있었다.
요나라 상경임황부는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래수현(淶水縣)의 왕촌진(王村鎮) 일대에 비정된다.
서안평(西安平)은 지금의 하북성 고비점시(高碑店市) 중심의 거마하(拒馬河) 유역에 비정된다.
소수맥(小水貊)은 북거마하(北拒馬河) 유역에 건국하였다.
- ☞ 안시성과 주필산, 새로 밝혀지는 위치 참조 바람
- ☞ Chinese units of measurement 참조 바람
- 「經淶流漸廣」 구절은 「래수(淶水)를 지나 흐르며 차츰 넓어져」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지적해둔다.
- ☞ 역수(易水)와 갈석산(碣石山) 그리고 창해(滄海), 지도 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