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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당(唐)대 탁군(涿郡)/유주(幽州) 계현(薊縣) 및 후연(後燕)의 연군(燕郡)이 하북성 석가장시 영수현(靈壽縣)이라는 주장의 오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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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야시민사학계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당(唐) 연주(燕州)의 위치는 今 하북성 석가장시 영수현(靈壽縣)에 비정되고, 더 나아가 연주는 수(隋)•당(唐)대의 탁군(涿郡)/유주(幽州) 계현(薊縣) 및 후연(後燕)의 연군(燕郡)과 동일한 곳이므로, 계현과 연군의 위치 역시 석가장시 영수현이라고 한다. 호삼성(胡三省)의 《通鑑釋文辯誤(통감석문변오)》 한 구절이 그 주된 근거가 된다고 하는데, 필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와 같은 주장은 사료를 오독한 데서 비롯된 착오임이 명백하여, 간략히 논하여 본다.

고조 신요대성대광효황제 재위중 무덕4년 3월 경신일(621.03.02 음)에 말갈의 수장 돌지계(突地稽)가 연주(燕州)총관에 임명되었다.  高祖神堯大聖光孝皇帝中之中 武德四年三月庚申,以靺鞨渠帥突地稽爲燕州總管。
『資治通鑑』 권189, 唐紀5

고조 신요대성대광효황제 무덕4년, 돌지계(突地稽) ['돌'로 발음한다. 흑수말갈 수장의 이름이다.] 연주(燕州). ['옌'으로 발음한다. 본래 영수현(靈壽縣)이다. 수(隋)가 설치하였고, 당(唐)이 폐지하여 진주(鎮州)에 속하게 했다.]  高祖神堯大聖光孝皇帝中之中 武德四年,突地稽 [突陁骨切。黑水靺鞨渠帥名。] 燕州 [於焉切。本靈壽縣,隋置,在唐廢焉,屬鎮州。]
『資治通鑑釋文』 권20, 唐紀5 通鑑 권189

[무덕(武德)]4년(621), 말갈의 수장 돌지계(突地稽)가 연주(燕州)총관에 임명되었다. 사소(史炤)의 《資治通鑑釋文(자치통감석문)》에 말하길, 「연주(燕州)는 본래 영수현(靈壽縣)이다. 수(隋)가 설치하였고, 당(唐)이 폐지하여 진주(鎮州)에 속하게 했다」 하였다.  내가 《舊唐書(구당서)》 '지리지'를 살펴보니, 의녕(義寧)원년(617)에 연주를 영수현에 설치하였다. 이 해에 [연(燕)]주를 폐지하여 영수현(靈壽縣)으로 되돌리고, [이어서] 항주(恒州)에 속하게 하였다. 목종(穆宗)에 이르러 '항(恒)'을 피휘하여 비로소 항주(恒州)를 진주(鎮州)로 개칭하였다. 이 연주(燕州)는, 수(隋)가 영주(營州) 지경의 여라고성(汝羅故城)에 요서군(遼西郡)을 설치하고 속말말갈(粟末靺鞨)이 살게 한 곳이다. 당(唐)은 마침내 그 지역에 연주(燕州)를 설치하고, 그 수장을 총관으로 삼았는데, 영수(靈壽)의 연주(燕州)와는 다른 곳이다.  四年,以靺鞨渠帥突地稽爲燕州總管。史炤釋文曰:燕州,本靈壽縣,隋置,在唐廢焉,屬鎮州。余按:舊唐書地理志:義寧元年,置燕州於靈壽縣。是年廢州,復爲靈壽縣,屬恒州。至穆宗諱恒,姓改恒州爲鎮州。此燕州,隋於營州之境汝羅故城置遼西郡,以處粟末靺鞨。唐遂於其地置燕州,以其渠帥爲總管,非靈壽之燕州也。
『通鑑釋文辯誤』 권9, 宋 胡三省 撰

《資治通鑑釋文(자치통감석문)》은 북송(南宋) 사마광(司馬光)의 《資治通鑑(자치통감)》의 음운 표기와 해석을 위한 남송(南宋) 사소(史炤)의 저작인데, 《資治通鑑》을 주석한 원(元)의 호삼성(胡三省)은 사소의 《資治通鑑釋文》이 학문적으로 매우 천박하고,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였다. 《通鑑釋文辯誤》는 《資治通鑑釋文》상의 오류와 잘못된 해석을 철저하게 고증하고 바로잡겠다는 특이한 의도로 집필된 호삼성의 저술이란 점을 우선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사소(史炤)가 자신의《資治通鑑釋文》에 돌지계(突地稽)와 연주(燕州)를 함께 엮어 「연주(燕州)는 본래 영수현(靈壽縣)이다.」라고 주해하여 마치 돌지계가 총관이 된 연주가 영수현과 관련이 있는 듯이 서술한 부분이다. 호삼성(胡三省)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通鑑釋文辯誤》에 해당 기사를 인용하고, 이와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舊唐書(구당서)》 '지리지'를 살펴본 바, 《資治通鑑》 본문 상의 「621년 말갈의 수장 돌지계(突地稽)가 총관에 임명된 당(唐)의 연주(燕州)」는 「617년 수(隋) 말기 영수현(靈壽縣)에 설치되었다가 621년 당(唐) 시기에 들어 영수현으로 복원되며 동시에 폐지된 동명의 연주(燕州)」와 전혀 다른 곳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즉, 그는 《通鑑釋文辯誤》를 통해 양 '연주(燕州)'가 동일한 곳이라는 듯이 기록한 사소(史炤)의 《資治通鑑釋文》을 반박하고, 그 오류를 밝혀 수정한 것이다.

영수(靈壽). 한(漢)의 현으로서, 항산군에 속하였다. 의녕(義寧)원년(617), [영수현(靈壽縣)에] 연주(燕州)를 설치하였다. 무덕(武德)4년(621), [연(燕)]주를 폐하고 [영수(靈壽)]현을 병주(并州)에 속하게 하였다. [무덕]7년(624) [병(并)]주를 폐하고 [영수현(靈壽縣)을] 항주(恒州)에 속하게 하였다.  靈壽 漢縣,屬常山郡。義寧元年,置燕州。武德四年,州廢,縣屬并州。七年,州廢,屬恒州。 
『舊唐書』 권39, 地理2 河北道

연주(燕州). 수(隋)의 요서군(遼西郡)으로 영주(營州)에 붙여 다스렸다. 무덕(武徳) 원년(618) 연주총관부(燕州總管府)로 고치었고 요서현(遼西) 로하현(瀘河) 회원현(懷遠)을 다스렸다. 그 해에 로하현(瀘河縣)을 폐하였다. 6년(623)에 영주(營州)로부터 남쪽으로 옮기어 유주(幽州)의 성내에서 붙여 다스렸다. 정관(貞觀) 원년(627) 도독부를 폐하고 또한 회원현(懷逺縣)을 없앴다. 개원(開元) 25년(737)에 치소를 유주의 북쪽 도곡산(桃谷山)으로 옮기었다. 천보(失寶) 원년(742) 귀덕군(歸徳郡)으로 고쳤고 건원(乾元) 원년(758)에 다시 연주(燕州)라고 하였다. 옛날에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실제로 차지한 땅은 없으며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속개말갈(粟皆靺鞨, 속말말갈)의 별종이며 가구수는 500이다. 천보 년간에 가구수는 2045이고 인구수는 1,1603명이다. 경사와 동도까지의 거리는 유주와 같다.  燕州. 隋遼西郡, 寄治於營州. 武徳元年, 改為燕州總管府, 領 遼西 瀘河 懷遠 三縣. 其年, 廢瀘河縣. 六年, 自營州南遷, 寄治於幽州城内. 貞觀元年, 廢都督府, 仍省懷逺縣. 開元二十五年, 移治所於幽州北桃谷山. 失寶元年, 改為歸徳郡. 乾元元年, 復為燕州. 舊領縣一, 無實土戸. 所領戸出粟皆靺鞨别種, 戸五百. 失寶, 戸二千四十五, 口一萬一千六百三. 兩京道里, 與幽州同.
『舊唐書』 권39, 地理2 河北道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면, 《資治通鑑》 및 《舊唐書》기록상 양 연주의 연혁은 아래 표1과 같이 대략 간추릴 수 있는데, 여기에 여실히 드러나 있듯이 각 연주의 연혁은 서로 간에 전혀 다른 과정를 거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를 들자면 617년 영수현(靈壽縣)에 설치된 연주B가 4년 뒤인 621년에 폐지되어 사라진 반면, 연주A의 경우 같은 해(621) 말갈 수장 돌지계가 총관에 임명된 이후로도 오랬동안 잔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주A 연주B
617 (의녕 원년)   영수현에 연주 설치
618 (무덕 원년) 연주총관부로 승격  
621 (무덕 4년) 돌지계 연주총관에 임명 연주 폐지, 영수현 병주에 편입
623 (무덕 6년) 유주에 기치  
624 (무덕 7년)    영수현 항주에 편입
737 (개원 25년) 도곡산으로 치소 이전  
742 (천보 원년) '귀덕군'으로 개칭  
758 (건원 원년)  '연주'로 복원  

표1 - 각 연주(燕州)의 연혁

 

《舊唐書》의 기록에 따르면 618년~621년 사이에 동명의 연주A와 연주B는 병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지명의 혼동이 비롯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후 621년 돌지계(突地稽)의 말갈족에게 연주A를 인계함과 때맞추어, 수(隋)가 망한 뒤 같은 이름으로 방치되어 있던 영수현(靈壽縣)의 연주B가 폐지, 정리된 듯하다.

여하튼, 수(隋)•당(唐)대의 탁군(涿郡)/유주(幽州) 계현(薊縣) 및 후연(後燕)의 연군(燕郡)과 동일한 위치에 있었던 연주는 표1상의 당(唐) 무덕6년(623) 유주에 기치(寄治)된 이후의 연주A이다. 그리고 연주A는 영수현(靈壽縣)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수(隋)•당(唐)대의 탁군(淇郡)/유주(幽州) 계현(薊縣) 및 후연(後燕)의 연군(燕郡)이 당시의 영수현(今 하북성 석가장시 영수현)에 있었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通鑑釋文辯誤》 '연주(燕州)' 관련 조항 말미의 「속말말갈의 수장을 총관으로 삼은 '연주'는 영수(靈壽)의 '연주'와는 다르다.  .... 非靈壽之燕州也。」라는 호삼성(胡三省) 선생의 명확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해당 연구자들이 선생께서 우려하던 오류를 범한 것을 보면, 비슷한 시기의 사료에 등장하는 동명의 지명들은 언제든지 역사 연구에 혼동과 착오를 일으킬 수 있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발전된 먼 미래에도 같은 오류가 반복될 것을 앞서 헤아린 것일까? 《通鑑釋文辯誤》의 위 사료를 통해 800여 년 전의 천재 사학가 호삼성 선생의 혜안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해진다.

참고로 필자는 《舊唐書》 '지리지'에 근거하여, 당(唐) 연주(燕州)가 영주(營州, 今 보정시 만성구滿城區 타남향坨南鄉 일대)에서의 기치(寄治)를 시작으로 하여, 무덕(武徳)6년(623)에 남쪽의 유주(今 보정시 당현唐縣)로 옮겨진 것으로 파악한다.

  1. 호삼성(胡三省, 1230~1302) : 중국 남송(南宋) 말기에서 원(元) 초기에 걸쳐 생존했던 역사학자로서,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음주(音注)를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2. 是年(이 해) : 《資治通鑑》 본문에 기재된, 돌지계(突地稽)가 연주(燕州)총관에 임명되던 무덕(武德)4년(621)을 가리킨다. 같은 해(621)에 영수현(靈壽縣)에 그 치소가 있던 또 다른 연주(燕州)가 폐지되고, 영수현(靈壽縣)은 병주(并州)에 편입되었다. ※ 《舊唐書》 '지리지'
  3. 此燕州(이 연주) : 무덕(武德)4년(621) 3월 경신(庚申)일, 말갈 수장 돌지계(突地稽)가 총관에 임명된 연주(燕州), 즉 《資治通鑑(자치통감)》 권189 '당기(唐紀)5' 본문에 등장하는 연주를 가리킨다.
  4. 당 목종 이항(唐 穆宗 李恒, 795~824)을 가리킨다.
  5. 사소(史炤) :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학자이자 역사가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주석서인 《資治通鑑釋文(자치통감석문)》 30권을 저술하였다.
  6. 기치(寄治) : 기치(寄治)는 공적인 의탁을 가리키는 용어. 지방관청이 타처에 더부살이하며 잠시 관리하는 것. ※ 바이두 백과 '寄治'
  7. ☞ 임유관(臨渝關)과 발착수(渤錯水), 새로 밝혀지는 위치 , 당태종의 회군 경로, ☞ 고대 유주(幽州) 연국(燕國) 계현(薊縣)의 절대위치는 하북성 보정시 당현(唐縣)이다. 및 ☞ 수나라 탁군(涿郡) 계현(薊縣)은 북경(베이징)이 아니다.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