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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명나라와의 국경 - 압록수(鴨綠水) 위치 비정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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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암수와 고려 말 명나라와의 국경

 


送高麗相還國 (환국하는 고려 대신을 배웅하다)
明 • 烏斯道

琛貢中朝使節持,樂浪人物好威儀。
보배로운 공물 지닌 조정의 사절, 낙랑 사람의 위엄 있는 차림새가 훌륭하도다.
董生作傅曾匡國,季札來賓解聽詩。
동생은 사부돼어 일찍이 나라를 바로잡고, 계찰은 손님에게 시를 풀어 들려주었네.
喜動龍顏天咫尺,行經鰲背路倭遲。
기쁜 빛이 용안에 있으니 천자 나라 지척이어, 자라 등 길 지나 멀리 돌아오셨구나.
陽春不隔黃岩水,歸及看花二月時。
정월에 황암수(黃岩水) 얼지 않았으니, 귀환하실 2월에는 꽃을 보시리라.

『春草齋集』 권4


명(明)초 홍무제(1368-1398) 때의 문인 오사도(烏斯道)가 지은 《高麗相還國 (환국하는 고려 대신을 배웅하다)》란 제목의 시(詩)가 있다. 오사도는 귀환하는 고려 사신의 배웅에 따라간 자리에서 시를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시에 묘사된 대로 고려 대신이 황암수(黃岩水)라는 하천을 건너 고려로 돌아간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황암수는 당시 명과 고려의 국경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위치가 궁금해진다.

압록의 서쪽에 또한 백랑(白浪), 황암(黃嵓)이란 두 물줄기가 있는데, 파리성(頗利城)에서 수(數)리를 지나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이것이 요수(遼水)이다. 당(唐) 나라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이적(李勣)이 남소(南蘇)에서 고구려를 크게 깨뜨리고, 강을 건너면서 그 강물이 매우 얕고 좁은 것을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이것이 요수(遼水)의 근원」이라고 했다.  鴨綠之西。又有白浪,黃嵒二水。自頗利城行數里。合流而南。是爲遼水。唐正觀間。李勣大破高麗於南蘇。旣渡。怪其水淺狹。問之。云是遼源。
『宣和奉使高麗圖經』 권3 城邑 封境

[정관]21년(647), 이적이 남소에서 고구려를 거듭하여 크게 쳐부수었다. 군사를 되돌려 파리성에 이르러 백랑, 황암 두 강을 건너니 모두 무릎 깊이도 안 되었다. 이적이 두 강물이 좁고 앝은 것을 괴이하게 여기어 요수의 발원지가 있는 곳을 거란에게 물으니 답하기를 「이 두 강물이 수(數)리를 더 가다가 서로 합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곧 요수라 일컫는다. 요수의 발원지에는 갈 수 없다」 하였다.  二十一年,李勣復大破高麗於南蘇。班師至頗利城,渡白狼、黃巖二水,皆由膝以下。勣怪二水狹淺,問契丹遼源所在。云:「此二水更行數里,合而南流,即稱遼水,更無遼源可得也。」
『通典』 권186

황암수(黃水, 즉 黃岩水 또는 黃巖水)는 송(宋)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고 저술한 《宣和奉使高麗圖經(선화봉사고려도경)》 및 두우(杜佑)의 《通典(통전)》을 비롯한 여러 사서들에서도 확인되는데, 《宣和奉使高麗圖經》에 기술된 바, 황암수가 [고려와 명(明)의 경계인] 압록수 [서쪽]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위 《宣和奉使高麗圖經》 및 《通典》 기록상의 '황암수'는 오사도(烏斯道)의 시에 등장하는 그것과 동일한 강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황암수(黃嵓水)가 백랑수(白狼水)와 합류한다고 했으므로 백랑수의 위치를 알면 황암수의 실체 역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지도 6 - 고려 말 압록수의 위치,  본 지도 출처: opentopomap.org


필자는 이전 글에서 고대 백랑수(白狼水)의 위치를 추적하여, 보정시 역현(易縣) 류가장촌(劉家庄村)에 위치한 굴륭산(窟窿山)에서 발원하는 今 폭하(瀑河)의 지류」(이하 편의상 <굴륭산지류>로 표기함)에 비정한 바 있다. <굴륭산지류>의 물줄기는 폭하와 합류한 뒤 얼마 안되는 거리를 북동쪽으로 더 흘러 今 역현(易縣) 당호진(塘湖鎮) 부근를 지나며 남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이는 위 《通典(통전)》의 「백랑수(白狼水)가 황암수(黃嵓水)와 합류한 뒤 남쪽으로 흐른다」는 기록에 일치한다. 더욱이 《通典》에 또한 「황암수와 백랑수가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요수라 한다.」하였는데, 이는 「안시성 남쪽에 요수 또는 압록수로 불리는 강물이 있다」고 한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역시 부합한다. (지도6 참조 바람)

이상 살펴본 바에 의하면 황암수(黃嵓水)의 실체는 <굴륭산지류>와의 합류 지점을 기준으로 그 상류의 폭하(瀑河)임을 알 수 있고, 이에 근거하여 서기 647년 이적(李勣)이 고구려 남소성(南蘇城)을 공격하고 돌아오던 길에 백랑수(白狼水)와 황암수를 건넌 위치가 매우 정확히 드러난다. 즉 이적은 今 역현(易縣) 공산촌(孔山村) 북쪽 인근을 서←동 방향으로 이동하며 <굴륭산지류>(백랑수)와 폭하(황암수)를 차례로 잇달아 건넌 뒤 회원진(懷遠鎭)으로 향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도6 참조 바람) 그렇다면 황암수는 곧 압록수(今 폭하) 상류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오사도(烏斯道)가 배웅하였던 고려 대신은 압록수를 건너 환국하였던 것이고, 결국 고려 말 고려와 명(明)의 국경은 당시의 압록수 즉 今 보정시 역현의 폭하 상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본 글의 2부에서 《金史》에 등장하는 흑룡강(黑龍江)이 압록수(鴨綠水, 鴨淥水), 혼동강(混同江) 또는 속말수(粟末水)로도 불렸으며 그 실체는 今 보정시 서북쪽 산지의 낭아산(狼牙山)에서 발원하여 역현(易縣), 서수구(徐水區), 및 용성현( 容城縣) 일대를 동남 방향으로 흘러 백양정(白洋淀) 습지에 유입되는 今 폭하(瀑河)임을 이미 밝혔다. 그렇다면 수(隋)•당(唐)대 고구려와의 경계 뿐만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후대인 남송(南宋)•금(金)대 고려와의 국경 역시 今 보정시 역현 및 서수구 일대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이 사실을 처음 깨닫고서도 필자는 "에이, 설마~"하는 의심이 앞섰으나, 고려 말 위화도 회군 전후의 시점에 있었던 일이 틀림없는 상기 「고려 대신의 환국」 '사건'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압록수의 위치를 감안하면, 우리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그리고 늦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뒤틀려 왜곡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 (1부 ~ 5부 통합)

 

  • 고구려 부여성(夫餘城)은 今 보정시 서수구(徐水區) 동부산향(東釜山鄕) 일대에 비정된다.
  • 고구려 오골성(烏骨城)은 今 보정시 역현(易縣) 산서촌(山西村) 인근의 야산에 비정된다.
  • 고구려-수(隋)•당(唐) 전쟁 당시의 압록수(鴨綠水, 鴨淥水)는 今 보정시 역현(易縣) 소재 폭하(瀑河) 상류에 비정된다.
  • 고려 시기의 압록수(鴨綠水, 鴨淥水), 혼동강(混同江), 흑룡강(黑龍江), 속말수(粟末水)는 모두 같은 물줄기로서, 今 보정시 역현(易縣) 및 서수구(徐水區) 소재 폭하(瀑河)에 비정된다.
  • 고려 시기의 장백산(長白山)은 今 보정시 소재 낭아산(狼牙山)에 비정된다.
  • 서압록수는 今 보정시 역현(易縣) 소재 폭하(瀑河)의 상류에 비정된다.
  • 동압록수와 살수(薩水)는 보정시 서수구(徐水區) 소재 폭하(瀑河)의 중•하류에 비정된다.
  • 살수대첩 직전 수(隋)군은 요동에서 철군하였다.
  • 살수대첩에 투입된 수(隋)군의 이른바 '별동대'는 수(隋)군의 주병력 자체였다.
  • 서기 647년 당(唐) 이적(李勣)이 건넌 황암수(黃嵓水)는 今 보정시 역현(易縣) 소재 폭하(瀑河) 상류에 비정된다.
  • 고려말 명(明)과의 국경을 이룬 압록수(鴨綠水, 鴨淥水)는 今 보정시 역현(易縣) 소재 폭하(瀑河) 상류에 비정된다.
  1. 董生(동생) : 중국 전한 중기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 서기전 176년? ~ 서기전 104년)를 가리킨다.
  2. 춘추 시대 오(吳) 나라의 공자(公子).
  3. 陽春(양춘) : 음력 정월(正月)의 다른 이름.
  4. 오사도(烏斯道)의 시에 등장하는 고려 대신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오사도가 명(明) 홍무제(洪武帝, 1368-1398) 때의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시의 배경이 고려 말기임은 분명하다. 참고로 사신으로 명(明)에 갔던 설장수(偰長壽)가 1388년 2월 (음)에 돌아와 명(明)의 철령위(鐵嶺衛) 설치 통고를 전하였다.
  5. 鰲背路(자라 등 길) : 고구려 건국 신화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어 주몽이 엄사수(淹㴲水)를 건널 수 있었다고 전한다.
  6. ☞ 백랑산(白狼山)과 백랑수(白狼水) 1부 - 흰색 이리를 닮은 산 참조 바람
  7. 한(漢)대의 요수(遼水)를 가리킨다.
  8. ☞ 흑룡강(黑龍江)과 혼동강(混同江) - 압록수(鴨綠水) 위치 비정 2부 (일연의 『삼국유사』는 정확하였다.) 참조 바람
  9. 폭하 상류의 동변에 접하여 우뚝 서있는 굴륭산(窟窿山, 즉 백록산白鹿山)은 햇빛이 비추는 때에 따라 황색 또는 흰색을 띠게 되는 바위산이다. '황암수(黃嵓水)'란 이름은 아마도 굴륭산의 이러한 모습에서 유래한 듯하다. ☞ 우북평군(右北平郡) 석성현(石城縣)에 갈석산이 있었다. - 백랑산과 백랑수 2부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