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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黑龍江)과 혼동강(混同江) - 압록수(鴨綠水) 위치 비정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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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의 『삼국유사』는 정확하였다.


살펴보건대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이며, 다른 이름은 안정홀이니 요수의 북쪽에 있었다. 요수의 다른 이름은 압록(鴨淥)으로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按麗時都安市城, 一名安丁忽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今云安民江.
『삼국유사』 권 3, 興法 제3 순도조려(順道肇麗)

일연이 《삼국유사》 '순조도려'에 언급한 요수(遼水)는 今 남역수(南易水)인데, 남역수는 발원지로부터 동남 방향으로 흐른 뒤 보정시 역현(易縣) 서성양촌(西城陽村) 인근에서 폭하(瀑河)와 합류하며 폭이 넓은 강물을 이룬다. 대륙의 강줄기들은 그 상류의 지류들이 합류한 뒤에도 지류 각각의 이름이 하류에 혼용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일연이 지적한 「요수와 압록수」가 바로 그와 같은 예일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일연은 요수(남역수)와 압록수(폭하)의 합류 지점을 기준으로 그 이하의 물줄기가 「요수 또는 압록수」로 불린다는 사실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서, 이는 앞서 논한 바, 폭하가 곧 압록수였을 개연성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된다.

[대요수는] 또 동쪽으로 흘러 안시현 서남쪽을 지나고 바다로 들어간다.  又東過安市縣西南 入于海
『水經』  '大遼水'

참고로, 《삼국유사》와 《水經(수경)》에 거의 동일하게 언급된 「요수와 안시성(安市城=安市縣)의 상호간 인접성」을 고려하면, 일연이 언급한 '요수'는 《수경》에 등장하는 대요수(大遼水), 즉 [수(隋)•당(唐)대의 요수가 아닌] 한대(漢代=고구려초기)의 요수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진짜 흑룡강과 장백산


거란의 우두머리가 발해를 공격하여 그 부여성을 빼앗았다. [호삼성 주 : 즉, 부여성은 당나라때 고려의 부여성이다. 고려왕 왕건의 나라가 있었을 때, 혼동강을 경계로 하여 지켰으나 혼동강의 서쪽은 진출하지 못하였다. 옛 부여성은 발해국에 속하였는데, 혼동강은 곧 압록수이다.]  契丹主攻勃海,拔其夫餘城,[胡三省 注 : 即唐高麗之夫餘城也。時高麗王王建有國,限混同江而守之,混同江之西不能有也,故夫餘城屬勃海國。混同江即鴨淥水。]
『資治通鑑』 권 275 (926년 7월 음)

위 《資治通鑑(자치통감)》 호삼성 주(注)에 따르면 왕건 고려의 서쪽 경계는 혼동강(混同江)이었고, 혼동강은 다른 이름은 '압록수'였다. 또한 주(注)에 [고구려, 발해 및 고려의] 부여성(夫餘城)이 혼동강과 함께 엮여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부여성은 혼동강 인근에 있었던 것 역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논하였다시피 고구려 시기의 압록수(今 역현易縣 소재 폭하瀑河)는 부여성(今 서수구徐水區 동부산향東釜山鄕)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資治通鑑》 주(注)의 혼동강과 수(隋)•당(唐)대의 압록수(폭하)의 위치는 부여성을 기준으로 상호 부합함을 알 수 있다. 이제 뭔가 퍼즐이 맞춰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대시기에 거란이 발해의 땅을 모두 취하자 흑수말갈은 거란에 부속하였다. 그 남쪽에 있는 자들은 거란의 호적에 편입되어 숙여직이라 불렀고, 그 북쪽에 있는 자들은 거란의 호적에 편입되지 않아 생여직이라고 불렀다. 생여직의 땅에는 혼동강과 장백산이 있는데 혼동강은 또 흑룡강 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백산, 흑수’가 이것이다.  五代時,契丹盡取渤海地,而黑水靺鞨附屬于契丹。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生女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金史』 권 1, 本紀 第1 世紀

 

《金史(금사)》에 혼동강(混同江)을 흑룡강(黑龍江)으로도 부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압록수는 혼동강이므로, 압록수은 동시에 흑룡강인 것이고, 앞서 논증을 통해 고대의 압록수가 今 보정시 역현(易縣), 서수구(徐水區), 및 용성현( 容城縣) 일대를 동남 방향으로 흘러 백양정(白洋淀) 습지에 유입되는 今 폭하(瀑河)임을 밝혔으므로, 폭하는 옛 흑룡강일 수 밖에 없다. 

 

 

박하(雹河)는 [보정]군 치소로부터 북쪽 60리 떨어져 있는 안숙현 북쪽 2리에 있다. [안숙]현 서남 120리에서 발원하여 [안숙]현의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20리를 흘러 흑룡구(黑龍口)로 들어간다.  雹河去郡治北六十里在安肅縣北二里 發源自縣西南一百二十里經縣北 東流二十里入黑龍口
『保定郡志』 권 20, 山川, 明 弘治甲寅年(1494년) 간행

박하(雹河)는 즉 폭하(瀑河)로서 포하(鮑河)라고도 한다. 역주로부터 흘러들어 안숙현 북문 밖을 지나고, 또 동남쪽으로 흘러 용성현 남쪽 20리 지점을 지난다. .... 즉 옛 남역수(南易水)이다.  雹河即瀑河亦名鮑河 自易州流入逕安肅縣北門外 又東南逕容城縣南二十里 .... 即古南易水也
『大清一統志』 권 10, 保定府 雹河

폭하(瀑河) 즉 남역수(南易水)는 계조하, 평하, 천하 모두와 합류하여 신안(新安)의 흑룡구(黑龍口)에 이르러 [백양(白洋)]정(淀)에 흘러든다.  瀑河即南易水合雞爪萍泉諸河至新安之黑龍口入淀
『大清一統志』 권 15, 河間府 四角河

 

 

지도 2 - 백양정 습지로 흘러드는 폭하 강변에 'Hei lung kou = 흑룡구(黑龍口)'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본 지도 출처: Karte von Tschili und Schantung, 1907

 

지도 3 - 백양정 습지로 흘러드는 폭하 강변에 '흑룡구(黑龍口)'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본 지도 출처: 『保定府志』 권17, 1886년 간행 (지도를 이어 붙이기 위해 편집 하였음).

 

 

그런데 놀랍게도 폭하(瀑河) 하류 강변에 접하여 있는 '흑룡구(黑龍口)'라는 지명이 현존한다. '흑룡구'는 고지도상에도 보이고 (지도2, 지도3  참조) 명(明)•청(清)대의 사서들에서도 또한 '雹河' 또는 '瀑河'와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곧 백양정(白洋淀) 습지가 그 흔적으로 잔존하는, 고대 발해만의 내해(內海)로 흘러들던 옛 흑룡강의 하구가 있던 곳이 틀림없다. 즉, '흑룡강(黑龍江)'이란 강물의 이름은 후금(後金)에 의하여 북만주로 옮겨졌으나, 본래 보정(保定)에 있었던 진짜 흑룡강의 자취가 흑룡구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흑룡구의 존재는 폭하가 바로 위 《金史》 기록상의 흑룡강이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임과 동시에 폭하가 곧 압록수였음을 입증하는 교차검증이 된다.
  
장백산, 령산 동남쪽 1,000여 리에 있으며, 대저 백의관음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 산에는 새와 짐승도 모두 흰빛인데, 사람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한다. 그 곳을 더럽힐까 염려하여 뱀의 해침을 마련하여 놓았다. 흑수가 여기에서 발원하는데, 예전에는 속말수라 하였다가 태종이 진(晉)을 쳐부수고 혼동강으로 고쳤다.  長白山,在泠山東南千餘里,蓋白衣觀音所居。其山禽獸皆白,人不敢入,恐穢其間,以致蛇虺之害。黑水發源於此,舊云粟末河,太宗破晉,改為混同江。
『契丹國志』  권 26

《契丹國志》에 또한 혼동강(混同江)이 곧 속말수(粟末水)라 하였으니, 사료들를 종합하면 압록수, 흑룡강, 속말수 및 혼동강은 모두 같은 강줄기 즉 폭하(瀑河)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흑수(흑룡강=今 폭하)가 발원하는 장백산의 실체는 다름아닌 갈석산(今 낭아산狼牙山)이었던 것이다.

청평(淸平)이 말하기를 속말수(粟末水)의 북쪽에 발해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의 땅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단군이 처음으로 도읍을 정한 임금성으로 곧 평양이다.  淸平云 粟末水之陽有渤海中京顯德府地 此乃檀君始都處 故壬儉城 卽平壤也
『규원사화』 '단군기'

필자는 발해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고구려 평양성 및 왕검성을 今 보정시 정흥현(定興縣)의 고성진(固城鎮)에 비정한 바 있는데, 《규원사화》에 인용된 《진역유기》의 기록에 따르면 속말수(粟末水)는 중경현덕부 바로 남쪽 방면을 흐르는 하천으로서, 今 폭하(瀑河)가 분명하다. 압록수, 흑룡강, 혼동강은 다시금 모두 지금의 폭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3부에서 계속 ...  ☞  https://earthlin9.tistory.com/45

 

  1. ☞ 지도1 우측 상단 참조 바람
  2. ☞ 요수(遼水)와 요동고새(遼東故塞), 고조선과 한(漢)의 국경선 참조 바람
  3. 흑수(흑룡강)와 속말수가 하북성 보정에 있었던 동일한 하천이므로, 발해의 건국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흑수말갈과 속말말갈은 본래 보정 일대의 발해만 유역에 본거지를 두고 살았던 같은 종족으로서, 후금(後金)이 마구잡이로 만주 송화강 또는 아무르강 유역 등에 옮겨 심어 놓은 가짜 지명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4. 淸平: 《진역유기(震域遺記)》의 저자 이명( 李茗)을 말한다.
  5.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 석경당(石敬瑭)이 건국한 후진(後秦, 936-946)을 가리킨다.
  6. ☞ 고조선의 왕검성과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는 하북성 보정시 정흥현(定興縣)의 고성(固城)이다. 낙랑군 패수(浿水)현의 정확한 위치 발견 참조 바람
  7. '雹'과 '龍'은 원시 한장어(原始 漢藏語, proto sino-tibetan language)의 천둥(thunder) 또는 용(dragon)을 뜻하는 'm‑bru(ŋ/k)'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 https://stedt.berkeley.edu/~stedt-cgi/rootcanal.pl/etymon/3629 참조 바람
  8. 《保定郡志(보정군지)》에 적용된 방위는 실제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소 틀어져있다.
  9. ☞ 한(漢), 당(唐)대 사이에 서쪽으로 옮겨진 요수(遼水)와 유성(柳城) 참조 바람